이장림 목사
이장림 목사는 1992년 10월 28일을 특정한 시한부 휴거 주장으로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다미선교회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이 페이지는 당시 주장, 형사 사건, 휴거 예정일 이후의 후속 기록을 역사 자료로 구분해 정리한다.
이장림 목사 한눈에 보기
| 주요 관련 단체 | 다미선교회 |
|---|---|
| 대표적으로 알려진 주장 |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난다는 시한부 종말론 |
| 1992년 형사 사건 | 사기 혐의로 구속됐고 이후 징역 1년과 미화 2만6천 달러 몰수형이 선고됐다고 동아일보가 기록 |
| 후속 기록 | 다미선교회는 예정일 이후 사과 광고와 헌금 반환 신청 안내를 냈다는 당시·후대 보도가 있음 |
1992년 다미선교회 휴거 주장
동아일보의 2017년 기록과 1992년 당시 연합뉴스 결산 보도는 다미선교회를 이끈 이장림 목사가 1992년 10월 28일 자정 휴거가 일어난다는 주장을 확산시킨 핵심 인물이었다고 정리한다. 실제로 그 시각에 주장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미선교회는 이후 사과 광고와 헌금 반환 안내를 냈습니다.
구속과 법원 판결
동아일보의 2004년 회고 기사와 후속 기록은 이장림 목사가 1992년 9월 사기 혐의로 구속됐으며, 법원이 징역 1년과 미화 2만6천 달러 몰수형을 선고했다고 전한다. 형사 판결 기록과 종교적 주장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서로 다른 문제이므로 이 페이지에서는 분리해 설명한다.
휴거 예정일 이후
동아일보는 다미선교회가 1992년 11월 사과 광고를 게재하고 헌금 반환 신청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또 2004년 회고 기사에는 이장림 목사가 출소 뒤 시한부 종말론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후속 내용이 소개됩니다.
사람들이 함께 찾는 질문
다미선교회가 예고한 날짜는 언제였나요?
1992년 10월 28일 자정이었습니다. 당시 주장한 휴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장림 목사는 왜 구속됐나요?
당시 보도에 따르면 헌금과 관련한 사기 혐의로 1992년 9월 구속됐고, 이후 법원에서 징역 1년과 미화 2만6천 달러 몰수형이 선고됐습니다.
이장림 목사가 이후 이름을 바꿨다는 기록이 있나요?
후대 동아일보 보도는 ‘개명 후 이답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기록한다. 다만 이 페이지는 확인된 역사 보도의 범위만 기록하고 현재 신원·활동을 추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