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선교사 연표: 귀츨라프·토마스·알렌·언더우드·아펜젤러, 누가 보냈나?
“한국에 처음 온 선교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기준을 나누지 않으면 답이 달라집니다. 한국 기독교 전체로 보면 1794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첫 외국인 성직자·선교사로 기록됩니다. 이 글은 그보다 뒤에 시작된 개신교 선교를 중심으로, 누가 언제 한반도에 왔고 어떤 교단·선교부가 보냈으며 오늘날 어떤 한국 교단 계보와 연결되는지를 연도순으로 정리합니다.
• 한국 기독교 전체 첫 외국인 성직자: 주문모 신부, 1794
• 한반도에 온 첫 개신교 선교사: 카를 귀츨라프, 1832
• 성경을 들고 조선 선교를 시도한 대표적 초기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1865·1866
• 조선에 상주한 첫 개신교 선교사: 호러스 N. 알렌, 1884
• 본격적인 장로교·감리교 파송 선교의 시작: 언더우드·아펜젤러·스크랜턴 일행, 1885
한반도 개신교 선교사·파송기관 연표
| 연도 | 선교사·인물 | 파송·소속 배경 | 한반도에서의 의미 | 오늘의 교단 계보 |
|---|---|---|---|---|
| 1794 | 주문모 야고보 신부 | 북경 교구 구베아 주교가 조선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파견 | 한국 기독교 전체로 볼 때 조선에 입국한 첫 외국인 성직자·선교사. 개신교가 아니라 천주교 | 한국 천주교 역사 |
| 1832 | 카를 귀츨라프 Karl Gützlaff |
1827년 네덜란드선교회 파송 이력. 1831년 이후 독립 선교 활동. 1832년 조선 방문은 영국 동인도회사 Lord Amherst호 항해에 동행 | 충청도 고대도 등에 머물며 한문 성경·교리서를 전하고 의료·문화 접촉. 일반적으로 한반도에 온 첫 개신교 선교사로 언급 | 특정 현대 한국 교단을 직접 창립한 것은 아님 |
| 1865·1866 |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Robert Jermain Thomas |
영국 회중교회 배경의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중국 주재 선교사 | 1865년 서해안에서 성경을 배포했고,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 때 다시 평양으로 향했다가 사망 | 직접적인 현대 한국 교단 창립으로 연결하지 않음 |
| 1872 이후 | 존 로스·존 매킨타이어 John Ross, John Macintyre |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 만주 선교 | 한반도 상주 선교사는 아니지만 만주에서 한국인들과 접촉해 성경 번역·전도. 로스 팀의 작업은 1880년대 한글 신약 번역과 국내 성경 유입의 중요한 기반 | 한국 장로교의 성경 번역·초기 신앙공동체 형성에 간접 영향 |
| 1884 | 로버트 S. 매클레이 Robert S. Maclay |
미감리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일본 주재 선교사. 해외선교부 지시에 따라 조선 방문 | 고종으로부터 교육·의료 활동에 대한 허락을 얻어 감리교 정식 파송의 길을 열음 | 한국 감리교 선교의 준비 단계 |
| 1884.09 | 호러스 N. 알렌 Horace N. Allen |
미국 북장로교 PCUSA 해외선교부(Board of Foreign Missions) | 1884년 조선에 들어와 상주한 첫 개신교 선교사로 평가됨. 의료선교를 통해 제중원 사역의 기반을 놓음 | 한국: 초기 한국 장로교 연합 계보. 미국: PCUSA → 1958 UPCUSA → 1983 PC(USA) |
| 1885.04 | 호러스 G. 언더우드 Horace G. Underwood |
미국 북장로교 PCUSA 해외선교부 | 장로교의 본격적 교회·교육·성경 번역 사역. 새문안교회, 성경번역, 교육사업 등에 큰 역할 | 현대 예장통합·합동 등 여러 한국 장로교 교단이 공유하는 초기 장로교 역사 |
| 1885.04~06 | 헨리 아펜젤러·윌리엄 B. 스크랜턴·메리 F. 스크랜턴 | 미감리회 해외선교부. 메리 스크랜턴은 미감리회 여성해외선교회(WFMS) | 배재학당, 정동 의료선교, 이화학당 등 교육·의료·교회 개척의 기반 형성 | 한국: 1930 북·남감리회 선교계가 합동해 자치 기독교조선감리회 → 오늘의 기독교대한감리회. 미국: MEC → 1939 The Methodist Church → 1968 UMC |
| 1889 | 조지프 H. 데이비스·메리 데이비스 | 호주 빅토리아주 장로교회 계열 선교 지원 | 1889년 부산 도착. 이후 호주 장로교 선교가 경남·부산 지역 교회·학교·병원 사역으로 이어짐 | 호주 장로교 선교 → 한국 장로교 연합선교 계보 |
| 1889 | 말콤 C. 펜윅 Malcolm C. Fenwick |
캐나다 출신 독립 선교사로 시작. 1902년 미국 보스턴 클라랜돈가 침례교회 배경의 엘라싱기념선교회 사역을 인수 | 원산을 중심으로 침례교 선교 조직을 발전시키고 1906년 교단 조직 |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초기 계보 |
| 1890 | 찰스 존 코프 주교·엘리 바 랜디스 등 | 영국성공회·SPG(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 코프가 조선 선교 주교로 파송돼 인천·서울을 중심으로 성공회 선교, 의료·교육 사역 시작 | 오늘의 대한성공회 계보 |
| 1892 | 리니 데이비스, 윌리엄 레이놀즈 부부, 윌리엄 전킨 부부, 루이스 테이트·매티 테이트 | 미국 남장로교 PCUS 해외선교부 | ‘7인의 선발대’로 불리는 초기 파송팀. 이후 전주·군산·목포·광주·순천 등 호남 중심 선교 | 한국: 초기 한국 장로교 연합 계보. 미국: PCUS에서 1973 PCA가 분리, 남은 PCUS는 1983 PC(USA)로 재연합 |
| 1895~1896 | E. R. 헨드릭스 감독·C. F. 리드 | 미남감리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 | 1895년 선교 가능성을 조사하고 1896년부터 남감리회 상주 선교가 본격화 | 한국: 1930 북감리회와 합동 → 기독교조선감리회 → 오늘의 기독교대한감리회. 미국: MECS → 1939 The Methodist Church → 1968 UMC |
| 1898 | 윌리엄 푸트 부부·로버트 그리어슨 부부·던컨 맥레이 | 캐나다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Canada) | 공식 캐나다장로교 한국선교 시작. 원산·성진·함흥 등 동북부 선교 | 캐나다 장로교 선교 → 초기 한국 장로교 연합 계보 |
| 1905 | 윌리엄 R. 스미스 William R. Smith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대총회(General Conference) | 한국 재림교회의 첫 외국인 상주 선교사로 내한. 1904년 이미 한국인 신자들이 미션필드를 조직한 뒤 파송됨 | 한국 재림교회 계보 |
| 1907 | 김상준·정빈 중심의 한국인 전도자 | 동양선교회(OMS)가 일본에 세운 동경성서학원 출신 | 서울에서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시작. 한국 성결교의 출발은 외국인 첫 선교사보다 한국인 전도자의 귀국 사역이 핵심 | 기성·예성이 공유하는 초기 성결교 역사 |
| 1908 | 로버트 호가드 부부와 구세군 개척대 | 영국 구세군(The Salvation Army) | 서울에 본영을 설치하고 복음전도·사회사업 시작 | 오늘의 구세군대한본영 계보 |
한국에 선교사를 보낸 미국 교단들은 지금 무엇이 되었나?
19세기 말 문서에 나오는 북장로교, 남장로교, 북감리회, 남감리회라는 이름을 2026년 미국 교단 목록에서 그대로 찾기는 어렵습니다. 20세기에 미국 교단끼리 다시 합동하거나, 합동 전에 별도의 교단이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 한국 파송 당시 미국 교단 | 한국에 보낸 대표 인물 | 미국 안에서의 이후 계보 | 2026년 현재 가장 직접적인 제도적 후계 |
|---|---|---|---|
|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PCUSA) 미국 북장로교 |
알렌, 언더우드 등 | 1958년 Unit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와 합쳐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UPCUSA) 형성 → 1983년 남장로교 PCUS와 재연합 | Presbyterian Church (U.S.A.), PC(USA) |
|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 (PCUS) 미국 남장로교 |
레이놀즈, 전킨, 테이트 등 | 1973년 보수파 교회 일부가 분리해 PCA 조직 → 남은 PCUS는 1983년 UPCUSA와 합쳐 PC(USA) 형성 | 기관적 재연합의 직계 계보는 PC(USA). 단, PCA도 PCUS에서 1973년 분리된 중요한 별도 후손 교단 |
| Methodist Episcopal Church (MEC) 미국 북감리회 |
매클레이,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 | 1939년 남감리회와 Methodist Protestant Church와 합쳐 The Methodist Church → 1968년 Evangelical United Brethren과 합쳐 United Methodist Church | United Methodist Church (UMC) |
| 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 (MECS) 미국 남감리회 |
헨드릭스, C. F. 리드 등 | 1939년 북감리회 등과 합쳐 The Methodist Church → 1968년 UMC | United Methodist Church (UMC) |
|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C | 메리 F. 스크랜턴 등 | 별도 교단이 아니라 북감리회 여성 해외선교 조직. 따라서 교단 계보는 MEC → The Methodist Church → UMC를 따라 이해해야 함 | 교단 후계는 UMC 계보. 여성선교 조직의 조직사는 별도로 봐야 함 |
| Seventh-day Adventist Church / General Conference | 윌리엄 R. 스미스 부부 | 1905년 General Conference가 스미스 부부를 한국으로 파송. 장로교·감리교처럼 다른 교단과 합쳐 이름이 사라진 사례가 아니라 오늘도 Seventh-day Adventist Church의 General Conference 체계가 이어짐 | 오늘의 Seventh-day Adventist Church |
미국에서 왔지만 ‘교단’ 자체가 아니었던 파송 주체도 있다
펜윅이 1902년 인수한 엘라싱기념선교회는 미국의 한 전국 교단 자체라기보다 보스턴 클라랜돈가 침례교회 배경의 선교사업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오늘의 특정 미국 침례교 교단 하나로 곧장 환산하는 것은 부정확합니다. 한국에서는 펜윅의 선교조직이 발전해 오늘의 기독교한국침례회 역사로 이어집니다.
또 한국 성결교 초기의 Oriental Missionary Society(OMS)는 교단이 아니라 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초교파적 성결 선교단체였습니다. OMS는 이후 이름을 바꾸며 오늘의 One Mission Society 계열로 이어지지만, 한국에서는 그 선교와 한국인 전도자들의 귀국 사역을 바탕으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예수교대한성결교회라는 독립 한국 교단들이 형성됐습니다.
그럼 PCA는 남장로교 PCUS의 ‘현재 이름’인가?
아닙니다. PCA는 1973년 PCUS 소속 교회 일부가 분리해 새로 조직한 교단입니다. PCUS라는 기존 조직 자체는 1983년 UPCUSA와 재연합해 오늘의 PC(USA)를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PCUS → PC(USA)는 제도적 합병 계보이고, PCUS → PCA는 분리·계승의 한 갈래입니다.
그럼 GMC도 아펜젤러를 보낸 북감리회의 직계 후계인가?
직접적인 제도적 후계라고 쓰면 부정확합니다. 아펜젤러를 보낸 MEC의 제도적 계보는 1939년 The Methodist Church를 거쳐 1968년 UMC로 이어졌습니다. Global Methodist Church(GMC)는 그보다 훨씬 뒤인 2022년 UMC에서 분리되어 출범한 별도 감리교 교단입니다.
한국의 예장합동·예장통합은 지금 PC(USA) 소속인가?
아닙니다. 초기 한국 장로교가 미국 북·남장로교 등 해외 선교부의 도움으로 성장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한국 장로교는 1907년 독노회와 1912년 총회 조직을 거쳐 자치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오늘의 예장통합·예장합동 등은 한국의 독립 교단이며 PC(USA)의 지부가 아닙니다.
한국의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지금 UMC 한국지부인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북감리회와 남감리회 선교계가 1930년 기독교조선감리회로 합동해 자치 교회를 조직했습니다. 오늘의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그 한국 자치 감리교 역사로 이어지며, 미국 UMC의 한국 지부라고 보면 안 됩니다.
핵심: “누가 한국에 선교사를 보냈는가”와 “그 미국 교단이 지금 무엇이 되었는가”,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자치 교단이 형성됐는가”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질문입니다.
왜 ‘한국 최초 선교사’라는 이름이 여러 명에게 붙나?
서로 다른 기준을 섞기 때문입니다.
- 기독교 전체의 첫 외국인 성직자: 주문모 신부(1794)
- 한반도에 온 첫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1832)
- 조선 선교를 목적으로 성경을 배포한 대표 초기 선교사: 토마스(1865·1866)
- 조선에 상주한 첫 개신교 선교사: 알렌(1884)
- 장로교·감리교의 본격적 정식 파송 선교: 언더우드·아펜젤러·스크랜턴 일행(1885)
따라서 “언더우드가 한국 최초 선교사” 또는 “알렌이 최초 선교사”라는 문장은 기준을 붙이지 않으면 불완전합니다.
장로교 선교사 한 명이 오늘의 예장합동·통합을 만든 것인가?
그렇게 일대일로 연결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미국 북장로교, 미국 남장로교,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 캐나다 장로교 등 여러 해외 장로교 선교부가 한국에서 협력했습니다. 미국장로교 역사자료는 1907년 네 장로교 선교계가 연합해 한국 장로교 조직을 세운 과정을 기록합니다.
이후 1912년 한국 장로교 총회가 조직됐고, 해방 전후와 1950년대를 거치며 고신·기장·통합·합동 등으로 여러 총회가 분립했습니다. 따라서 언더우드는 오늘의 특정 한 교단만의 ‘창시자’라기보다 여러 한국 장로교 교단이 공유하는 초기 선교 역사에 속합니다.
이 흐름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역사와 현재, 예장통합 가이드, 예장합동 가이드에서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이 만든 교단은 지금의 기독교대한감리회인가?
직접적으로는 미국 북감리회 선교가 먼저 들어왔고, 1895~1896년부터 미국 남감리회 선교가 별도로 시작됐습니다. 두 선교계는 한국에서 각각 교회·학교·병원·신학교육을 운영하다가 한국 교회의 자립 요구 속에서 합동을 추진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공식 역사는 1930년 12월 2일 북감리회와 남감리회가 연합해 기독교조선감리회 창립총회를 열었다고 기록합니다. 오늘의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이 자치 감리교회 역사와 연결됩니다.
침례교·성공회·재림교·구세군은 어떻게 시작됐나?
침례교
기독교한국침례회 공식 역사는 캐나다 출신 말콤 펜윅이 1889년 한국에서 선교를 시작했고, 1902년 엘라싱기념선교회 사역을 인수한 뒤 원산·강경·공주·울진 등을 중심으로 조직을 발전시켜 1906년 교단을 창설했다고 기록합니다.
성공회
영국성공회는 한국 선교를 위해 찰스 존 코프를 조선의 초대 선교주교로 세우고 SPG가 선교를 지원했습니다. 코프는 1890년 한국에 도착해 인천과 서울을 중심으로 의료·교회 사역을 전개했습니다. 이는 오늘의 대한성공회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교회 역사입니다.
재림교
재림교는 오히려 한국인 신자들이 먼저 1904년 일본에서 신앙을 받아들이고 국내 미션필드를 조직한 뒤, 대총회가 요청을 받아 윌리엄 스미스를 1905년 첫 외국인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외국 선교사가 먼저 와서 교단을 만들었다”는 단순한 공식과 다른 사례입니다.
구세군
1908년 영국 구세군이 로버트 호가드를 초대 한국 사령관으로 파송하면서 한국 구세군 선교가 시작됐습니다. 초기부터 복음전도와 사회봉사를 결합한 것이 특징입니다.
성결교는 외국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만든 교단인가?
초기 과정이 조금 다릅니다. 미국인 C. E. 카우만과 E. A. 길보른이 조직한 동양선교회(OMS)가 일본 도쿄에서 성서학원을 운영했고, 그곳에서 공부한 한국인 김상준·정빈이 1907년 귀국해 서울에서 복음전도관을 시작했습니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공식 역사는 이 두 한국인 전도자의 귀국 사역을 교단 기원의 핵심으로 설명합니다. 외국인 감독 존 토마스는 1910년에 부임했습니다. 즉 한국 성결교 초기사는 외국 선교단체의 교육·후원 + 한국인 전도자의 귀국 개척이 결합된 사례입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남긴 교회·학교·병원
| 선교사·선교계 | 대표 유산 |
|---|---|
| 알렌·북장로교 | 제중원 의료선교 기반, 이후 세브란스 계열 역사와 연결 |
| 언더우드·북장로교 | 새문안교회, 성경 번역, 교육사업, 연희전문 계열 역사 |
| 아펜젤러·북감리교 | 배재학당, 정동감리교회, 성경번역·출판 |
| 메리 스크랜턴·감리교 여성선교회 | 이화학당, 여성교육·여성의료 사역 |
| 미국 남장로교 | 전주·군산·목포·광주·순천의 교회·학교·의료선교 |
| 영국성공회 | 인천·서울 성공회 교회와 의료·교육 사역 |
자주 묻는 질문
한국에 처음 온 선교사는 언더우드인가요?
아닙니다. 개신교 기준으로는 귀츨라프가 1832년 한반도에 왔고, 상주 개신교 선교사는 알렌이 1884년에 먼저 입국했습니다. 언더우드는 1885년 입국해 본격적인 장로교 선교 조직과 교회 설립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알렌과 언더우드는 같은 교단인가요?
둘 다 미국 북장로교 PCUSA 해외선교부와 연결된 선교사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장로교 교단을 한 사람에게 직접 대응시키면 안 됩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같은 배를 타고 왔나요?
두 사람은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제물포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대표적인 장로교·감리교 선교사로 함께 기억됩니다. 다만 소속 교단은 각각 미국 북장로교와 미감리회로 달랐습니다.
한국 장로교는 미국 북장로교가 만든 교단인가요?
미국 북장로교의 영향이 매우 컸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면 불완전합니다. 북장로교·남장로교·호주장로교·캐나다장로교가 협력했고, 한국인 지도자들이 교회와 노회·총회를 조직하면서 한국 장로교가 형성됐습니다.
한국 감리교는 북감리교인가 남감리교인가요?
둘 다 한국에서 선교했고, 1930년 두 계열이 합동해 한국의 자치 감리교회를 조직했습니다.
외국 선교사가 모든 한국 교단을 만든 것인가요?
아닙니다. 성결교처럼 해외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은 한국인 전도자들이 먼저 귀국해 사역을 시작한 경우가 있고, 재림교도 한국인 신자들이 먼저 공동체를 만든 뒤 외국 선교사를 요청했습니다. 초기 한국 기독교사는 외국 선교사와 한국인 신자·전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주요 공식·학술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선교사
- 우리역사넷 — 초기 개신교 선교와 토마스
-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 PCUSA/UPCUSA Korea Mission Records
-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 PCUS Korea Mission Records — 남장로교 한국선교와 1983 PC(USA) 재연합 이후 행정 계보
- United Methodist General Commission on Archives & History — UMC predecessor denominations — MEC·MECS·The Methodist Church·UMC 계보
- 기독교대한감리회 — History of the Methodist Church
- 이화여자대학교 — Mary F. Scranton
- 기독교한국침례회 — 교단 창설기와 펜윅
- Korea.net — 호주 장로교 선교사 Davies
- 대한성공회 모닝캄 아카이브 — 코프 주교와 SPG
- 재림교회 120주년 역사관 — 1904~1910 초창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구세군대한본영
- 예수교대한성결교회 — 한국 성결교 초기 역사
마지막 확인: 2026년 9월 26일. ‘최초’는 방문·상주·정식 파송·교단 조직 등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 글은 각 기준을 구분해 기록합니다.